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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스나이퍼 '특등사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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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날며 움직임이 불규칙하고 보호색을 하고 있는 사냥하기 어려운 작은새를 스나이프라고 합니다. 이 스나이프라 불리는 새를 사냥할 수 있는 사수를 스나이핑이라 칭하였고, 전쟁 중 주목받는 명사수들도 스나이핑이라 불리게 되면서 점점 파생되어 스나이퍼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오늘은 남자 여자 구분없이 모두 합한 역대 스나이퍼 14명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4. 로자 게오르기예브나 샤니나 (1924~1945) - 공식 저격 기록 59명

 

샤니나는 공식 저격사살 기록으로 59명을 기록해 오늘 소개해드릴 스나이퍼중 14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설의 여성 스나이퍼 중 1명으로 알려진 샤니나의 본 직업은 교사였습니다. 하지만 1942년 자신의 오빠가 전쟁에서 전사한 후 자진 입대하여 사격수로 최전방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전투에 나선 그녀는 불과 10개월만에 59명의 적을 저격사살하며 소련군 여성 저격수 최초로 영광 훈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마 동프로이센에서 소속부대의 지휘관을 엄호하는 임무수행 중 적의 포격을 맞고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샤니나가 사용하던 총기는 모신나강 m1891/30에 PU스코프를 장착했습니다.

 

 

13. 로브 풀롱 (1976~) - 공식 저격 기록 65명

 

풀롱은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긴 저격 사살기록을 보유 중이었습니다. 풀롱이 기록했던 장거리 저격사살 기록은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아나콘다 작전' 당시 알카에다와 치열한 전투도중 50구경의 Tac-50을 사용하여 2,439m에 위치한 적에게 저격사살을 성공했습니다.

 

 

12. 카를로스 노만 헤스콕 (1945~1999) - 공식 저격 기록 93명 (비공식 300명 이상)

 

헤스콕의 저격사살 기록은 미국에서 1위는 아니지만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 전투에서 12명의 적군 저격수를 역저격하였고 그 중 한발이 적의 스코프를 관통한 기록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베트남 전쟁에서 3박4일 동안 1.5km를 포복으로 침투해 아군 소대를 포위한 정규군 1개 중대를 장군을 포함한 장교들과 통신병들 위주로 사살해 아군을 구해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93명을 사살했고 그 중 절반이 상대 저격수였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당시 베트남군이 두려워 헤스콕에게 최대 금액의 현상금인 3만달러의 포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헤스콕이 사용했던 저격총은 M21 SWS입니다.

 

 

11. 찰스 마위니 (1949~) - 공식 저격 기록 103명 (비공식 319명)

 

찰스 마위니는 베트남전 당시 16개월 동안 확인된 사살 103명을 기록했으며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기록은 319명입니다. 이 기록은 미 해병대 스나이퍼 중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죠. 마위니의 기록은 처음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역 후  자서전을 발행하면서 해병대 시절의 저격 기록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10. 아델버트 월드론 (1933~1995) - 공식 저격 기록 109명

 

베트남전에서 미국 보병사단에 소속되어 활약한 월드론 선임하사는 타이밍의 마법사란 별명과 함께 인간 헌터, 지상의 고스트 등 많은 별명이 지어졌습니다. 월드론은 크리스 카일 전까지 미국 스나이퍼 중 가장 많은 저격사살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9. 크리스 카일 (1974~2013) - 공식 저격 기록 160명 (비공식 255명)

 

이라크 전쟁에 4번이나 참전하여 미군 네이비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격수로 이름을 알린 크리스 카일은 미국방부에서 직접 160명의 저격사살 기록을 인정해줬습니다. 사용하던 저격총은 Tac-338a였으며 그는 유명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크리스 카일은 2009년 제대 후 민간군기업등에서 저격수 훈련교관으로 근무하며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하였으며, 전쟁에서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는 병사를 위해 기부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 카일은 2013년 자신이 치료하던 미 해병대 출신 에디 레이 루스를 치료하기위해 방문한 텍사스의 한 사격장에서 함께간 친구 채드 리틀필드와 함께 그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8. 바실리 자이체프 (1915~1991) - 공식 저격 기록 242명 (비공식 400명 이상)

 

바실리 자이체프 대위는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로 소개되며 유명해졌습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단 한 전투에서 225명을 사살했는데, 그 중 11명이 적군의 스나이퍼를 역저격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2차대전에서 맹활약하며 소련의 영웅이된 자이체프는 비공식적으로는 1.000m 거리에서 무려 400명 이상의 적을 저격사살 한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에게 교육받은 후배 저격수들의 기록을 합하면 3.000명 이상의 적을 저격사살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용한 저격총은 m1891입니다.

 

 

7.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1916~1974) - 공식 저격 기록 309명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소련군을 위해 전투에 나선 파블리첸코는 역사상 최고의 여성 스나이퍼입니다. 14살부터 우크라이나 키예프 조병창 사격클럽에 가입해 사격을 배웠으며, 1941년 소련 붉은 군대에 입대해 세바스토폴 전투에 투입되어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2달간 독일군을 무려 187명이나 저격 사살해버렸습니다. 그녀가 사용한 저격총은 모신나강 m1891/30에 PE스코프를 사용했씁니다.

 

 

6. 마테우스 헤체나이어 ((1924~) - 공식 저격 기록 345명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오스트리아 티롤 출신으로 육군 산악부대 상병으로 복무 중 사격에 특출난 실력을 보여 전문 저격 훈련을 받고 제3산악사단에 배치되어 동부전선에서 345명을 저격 사살했으며, 가장 먼거리에서 저격 사살한 기록은 1,100m입니다. 1945년 4월 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받고, 같은해 5월 5련군에 잡혀 5년간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어있다 풀려났습니다.

 

 

5. 세묜 노모코노프 (1900~1973)- 공식 저격 기록 367명

 

세묜 노모코노프는 몽고의 가난한 사냥꾼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나이부터 사격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1941년 8월에 군에 입대한 후 저격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차대전 중 독일군을 367명이나 저격하면서 몽골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저격 스코프없이 가늠좌만으로 저격하였으며 한 명씩 저격에 성공할때마다 자신의 파이프담배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를 남겼습니다.

 

 

4. 프란시스 페가마가보 (1891~1952) - 공식 저격 기록 378명

 

캐나다 인디언 출신이었던 프란시스 페가마가보는 캐나다 해병 원정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만 378명을 저격사살하고 300명을 포획한 공으로 3개의 국가훈장을 받았습니다. 페가마가보는 전쟁이 끝난 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인디언의 자유를 위해 힘썼습니다.

 

 

3. 표도르 오클로포프 (1908~1968) - 공식 저격 기록 429명

 

동양인이었던 표도르는 소련군을 위해 2차대전에 참가하여 492명을 사살했습니다. 소련을 위해 저격수로 맹활약한 오클로포프는 1965년 레닌으로부터 국가 최고 훈장을 받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훈장을 반납해야만했습니다. 오클로포프가 사용한 저격총은 모신나강 m1891/30입니다.

 

 

2. 이반 도렌코 (1919~1987) - 공식 저격 기록 500명

 

소련군 제1122소총부대 소속의 이반 시도렌코는 바실리 자이체프만큼은 유명하지 못하지만 150만명이라는 세계 최대의 희생자를 만들어낸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만 500명을 저격한 소련 최고의 저격수입니다.

 

 

1. 시모 해위해 (1905~2002)- 공식 저격 기록 505명 (기관단총 200명)

 

시모 해위해는 핀란드 전설의 저격수이며 화이트 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확인된 사살 705명 중 505명이 저격사살이며, 200명은 기관단총을 사용해 사살한 대단한 전과를 가지고있습니다.

 

해위해가 만든 저격 기록은 단 100일간의 전투에서 발생한 기록이며, 단 한번도 빠짐없이 저격용 스코프 없이 눈금자로만 기록한 믿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단 한번도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스코프를 사용하게되면 스코프에 빛이 반사되어 적에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전투 막바지에는 유탄에 맞아 턱과 뺨을 크게 다쳤습니다. 해위해 역시 모신나강 m1891/30입니다.

 

이상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저격수 Top14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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