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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여자 스나이퍼 '죽음의 숙녀, 루드밀라 미하일로브나 파블리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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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단 10개월 동안 저격수 36명을 포함해 독일군 309명을 사살한 여성 스나이퍼 '죽음의 숙녀(Lady Death)' 루드밀라 미하일로브나 파블리첸코(Lyudmila Mikhailovna Pavlichenko)

 

 

그녀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여자 저격수 루드밀라 M. 파블리첸코는 1916년 7월 12일 우크라이나 벨라야 체르호프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이 되던 해 그녀는 가족과 함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 이주하였고 키예프 조병창에서 일하며 사격 클럽에 가입해 사격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는 최고의 여성 스나이퍼 파블리첸코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키예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소련의 붉은 군대에 자원임대하였습니다. 소련군에 입대한 그녀는 과거 사격훈련을 받은 경험으로 소련 붉은군대 제 25보병사단 54저격연대에 배치되어 1941년 8월 벨리아예프카 방어전에서 2명의 적을 처음으로 저격하였습니다.

 

 

이후 독일군이 우크라이나 흑해 연변의 오데사를 장악하고 흑해 군항 요충지 세바스토폴을 함락시키려해 소련군은 파블리첸코를 세바스토폴에 투입시키게됩니다. 세바스토폴 전투에 투입된 파블리첸코는 두 달 만에 187명의 독일군을 저격하는 등 총 10개월 간 309명의 독일군을 사살하며 소련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루드밀라 M. 파블리첸코가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사용한 저격소총은 모신나강 m1891을 개량한 m1891/30에 4배율의 PE스코프를 장착한 소총이었습니다.

 

 

모신나강 m1891은 러시아 제국이 1981년 채택한 제식 볼트액션 소총으로 당시 단발식 소총의 한계를 느껴 새로운 제식 소총의 설계를 공모했고 이 공모전에서 벨기에 출신 제롬 미셸 에밀 나강, 앙리 레옹 나강 형제가 내놓은 총이 가장 높은 테스트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타국의 사람이 개발한 총기를 사용하는게 자존심 상한 러시아 제국은 탄창만 나강 형제의 설계를 사용하게됩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개발한 소총의 탄창을 멋대로 가져다 사용하자 나강 형제는 소송을 걸었고, 결국 소송에서 이겨 소총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자신들이 개발한 권총을 채용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당시 러시아군의 무기 제조 담당자인 조병창 책임자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모신이 내놓은 설계안과 나강 형제의 탄창 설계안을 합해서 사용해 지금의 모신 나강이란 이름의 소총이 되었습니다. 초기형인 M1891은 채용 당시로는 획기적인 볼트엑션 장전식에 탄젠트식 조준기를 사용하여 주목받았습니다.

 

 

세바스토폴에서 맹활약하던 파블리첸코는 1942년 6월 독일군의 박격포탄에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소련군은 영웅 파블리첸코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 하게되는데 결국 잠수함까지 투입시켜 그녀를 구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녀가 후송된 후 결국 세바스토폴은 함락당하고 말았습니다.

 

파블리첸코는 부상 회복 후 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후방에서 수백명의 소련군 저격수를 양성시켰습니다. 1943년에는 소련 영웅 금성훈장을 수여받고 소령까지 진급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파블리첸코는 키예프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역사학자가 되었습니다. 이 후 소련 해군 본부의 수석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등 마지막까지 러시아 제국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녀는 1974년 10월 10일 58세의 나이로 사망해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지(16세기에 건립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에 안장되었으며 이 후 그녀를 위한 기념우표까지 발행되었습니다.

 

여성 스나이퍼로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0개월 간 309명의 독일군을 저격한 경이로운 전과를 세운 루디밀라 M. 파블리첸코의 기록은 여성 스나이퍼로는 가장 많은 저격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녀의 일대기는 영화 '1941 : 세바스토폴 상륙작전 (2015)'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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