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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의 기적을 만든 히틀러의 결정적인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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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Twin H입니다. 얼마전 기적의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영화로 개봉되었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덩케르크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전선을 방문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덩케르크로 전진하는 독일 기갑부대를 포함한 전군에게 진격 정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4일이나 지난뒤 다시 공격에 나섰죠. 덕분에 34만명의 연합군이 기적같은 덩케르크 철수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히틀러가 진격을 멈췄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덩케르크 고립의 원인이었던 마지노선부터 히틀러에 의해 기적의 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까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2차 대전 이전인 1927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독일과 벨기에 국경의 방어선에 총 750km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게됩니다. 이 방어선을 현재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마지노선(Maginot Line)이라 불렀으며 당시 프랑스 국방장관 안드레 마지노의 주도로 건설이 진행되었기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마지노선으로 부르게 되었죠.

 

이 마지노선은 독일과의 국경쪽은 집중적으로 투자해 방어선을 강화하고 벨기에 국경쪽은 느슨한 참호 형태로 구축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이런식으로 마지노선을 구축한 이유는 미래에 독일 침략이 발생한다면 독일군이 제 1차 대전 당시처럼 벨기에를 통과하여 프랑스로 진격할 것이라 생각하여 독일 국경쪽은 마지노선을 강화해 막아내고 벨기에로는 대량의 군사를 집중시켜 독일군을 분쇄할 계획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마지노선의 이런 방어선은 어리석은 짓이었으며 프랑스가 순식간에 무너지게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지노선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 일대에 350km의 방어선을 우선적으로 포대와 벙커를 설치해 수많은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이로인해 히틀러의 프랑스 침략 지시를 독일 군부가 9번이나 핑계를 대며 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군부는 막연히 히틀러의 명령을 피하기만 한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히틀러만큼이나 프랑스 침략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히틀러가 프랑스 침략을 원했던 이유는 제 1차 대전에서 패배하며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굴욕을 감수해야할때 프랑스가 독일에게 가장 혹독하게 대해 독일은 이때부터 프랑스에 대한 복수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침략을 계획한 독일은 마지노선을 정면 돌파한다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었기에 마지노선의 요새를 파괴할 괴물같은 무기들을 개발하게 됩니다. 이때 탄생한 무기가 바로 괴물 무기로 알려진 600mm 칼자주 박격포(Kal-Gerat)와 역사상 최대의 거포 800mm 구스타프(Schwerer Gustav)입니다.

 

정면돌파 외에 다른 작전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가장 뛰어난 전략가로 알려진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하인츠 구데리안은 프랑스 침략을 준비하며 독자적인 작전 능력의 전차부대를 군단급 이상으로 편성해 후방 깊이 침투시키는 전술을 완성했습니다. 이 전술은 마지노선 북쪽끝 아르덴 고원 지역을 거쳐 스당을 장악한 뒤 앞서 벨기에 깊은 곳까지 유인해 연합군을 후방에서 포위해 섬멸하는 계획이었습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첫 공격을 시작하자 프랑스 주전력을 마지노선 독일 국경에 배치하고 나머지 병력과 영국 연합군 150만명의 병력이 벨기에로 진군해 방어선을 쳤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제 1차 대전 당시만 생각한 작전이었습니다. 독일은 구스타프 등의 괴물 무기까지 만들었지만 주전력을 배치한 마지노선이나 연합군이 위치한 벨기에로 향하지 않고 만슈타인의 작전대로 5월 13일 아르덴 고원으로 우회하여 프랑스군을 포함한 연합군을 포위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이 아르덴 지역이 나무가 촘촘하고 길이 좁은 고원지역이라 독일 기갑부대에 통과가 불가능할거라 여겨 이곳의 마지노선은 허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예상과 다르게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엄청난 속도로 아르덴 고원지역을 돌파해 연합군을 북부해안으로 몰아붙이게됩니다. 프랑스는 예상치 못한 공격과 빠른속도로 전진하는 독일에 싸우지도 못하고 달아나거나 항복하는 병사들이 속출했습니다.

 

 

결국 연합군은 북쪽 해안지역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점령 당하게되고 이로인해 모든 지원도 완벽하게 차단당하게됩니다. 이때 영국군은 본토로 철수하기 위해 사령부에 보고를 했지만 역습을 시도해 돌파하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결국 영국 고트 장군은 기갑부대를 이끌고 아라스 지역의 독일군 구데리안이 이끄는 기갑부대 측면에 역습을 시도했습니다. 기습적인 역습에 독일의 구데리안은 크게 당황하며 연합군 기갑부대와 아라스에서 치열하게 전차전을 벌였습니다.

 

전투 초반에는 연합군 기갑부대의 기습으로 인해 독일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추가 연합군 병력 등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여 결국 독일의 공군과 기갑부대를 활용한 협공으로 포위망을 뚫거나 전진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한편 룬트슈테르 지휘하에 포위망을 좁혀가던 독일은 A집단군 전체가 북상하여 포위지역 안에 남은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 불로뉴, 그리고 덩케르크로 각각 기갑부대를 보내어 포위망을 점차 좁혀나갔습니다. 연합군은 이 3개 도시에 대한 방어준비가 어느정도는 되어있었지만 얼마 못가 세곳 중 불로뉴와 칼레가 차례로 독일군에게 함락당했습니다. 이제 연합군에게 남은 곳이라곤 덩케르크 뿐이었습니다.

 

독일군은 계속해서 빠르게 진군해 마지막 남은 덩케르크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히틀러의 알 수 없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5월 24일 전선을 방문한 아돌프 히틀러가 덩케르크로 전진하는 독일 기갑부대를 포함한 전군에게 진격 정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히틀러의 정지 명령이 끝나고 공격에 나선건 무려 4일 뒤였습니다. 연합군에게는 기적같은 탈출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미 5월 19일부터 철군을 계획했던 영국은 철군 작전의 지휘관을 영국 해군 중장 베트람 렘세이에게 마틱고 작전명을 다이나모 작전이라 붙였습니다. 렘세이 사령관은 도버 해협을 통해 포위된 연합군을 구하려 했지만 아무리 최강의 해군력을 지닌 영국이라 하여도 40만이 넘는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군함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영국은 결국 선박 징집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때 모인 선박들은 왕실의 선박부터 유람선 그리고 작은 어선들까지 870척이 넘는 선박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선박들 덕분에 34만명에 가까운 병사들을 기적적으로 영국 본토에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주력이 거의 빠져나간 뒤인 6월 4일에서야 덩케르크를 점령할 수 있었고 남은 4만명의 프랑스군을 포로로 붙잡았습니다. 영국군은 덩케르크 철수작전에서 비록 모든 무기들을 버리고 프랑스군 4만명이 포로로 잡혔지만, 작전 계획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5만명만 살려도 성공이라고 했을정도로 힘든작전이었으니 덩케르크의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철수 작전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영국이 끝까지 항전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덩케르크 함락을 앞두고 진격을 멈춘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종전 후 부터 지속적으로 추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독일의 헤르만 괴링 공군 원수가 공군력만으로 덩케르크의 연합군을 처리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했고 프랑스의 다른 지역을 빠르게 공격하려면 덩케르크로 향하던 기갑부대가 필요했던 히틀러는 괴링을 믿고 공군에게 모든걸 맡기려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갑 부대의 진격이 쉽지 않은 덩케르크 지역 특성상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고 식량, 연료, 탄약 등을 보급하기 위해 정지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 1차 대전 당시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은 이 같은 이유로 영국과 프랑스군에 반격을 허용하며 연합군에게 주도권을 빼앗긴적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당시 사령관이었던 룬트슈테르가 기갑부대와 보병부대의 간격이 심하게 벌어져 계속해서 진격 속도를 낮추라고 요구했지만 육군 총사령부는 하루빨리 덩케르크를 함락시키기를 원해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에 육군 총사령부는 룬트슈테르의 지휘권을 히틀러와 상의 없이 정지시키게 되고 이를 알게된 히틀러는 자신의 생각과 같았던 룬트슈테르를 자신에게 보고도 없이 지휘권을 정지시킨 것에 화가나 자신이 최고 사령관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위해 일부러 명령을 내려 전군의 진격을 멈추게 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히틀러가 종전 이후를 대비해 일부러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지켜봤다는 것입니다. 덩케르크에서 40만을 모두 죽일 수 있었지만 일부러 철수 할 시간을 주며 자비를 베풀어 종전 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평화협정을 맺을때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하기 위해서 일부러 철수 할 시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외에도 몇 가지 추측이 더 있습니다. 현재까지 추측만 있을 뿐 히틀러가 덩케르크에서 진격을 멈춘 진짜 이유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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